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백일장 / 사생대회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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제목 제37회 백일장 - 산문부대상 등록일 2020.11.17 00:01
글쓴이 관리자 조회 333

산문부 대상

 

장 마

 

삼척여자고등학교

3학년 5

오 채 민

 

올해 유난히도 길었던 장마가 끝이 났다.

지우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.

지우는 내가 한 달 동안 병원에 입원해 있으며 만난 친구였다. 지우는 비슷비슷한 무채색의 비니을 쓴 환자들 사이에서 식상한 색깔은 싫다며 새파란색의 비니을 즐겨 썼다. 지우는 내가 속해 있던 6층 병실에서 유일한 내 또래였다. 병실 사람들과 지우가 함께 이야기를 나눌 때면 침울하게 가라앉아 있던 병실의 분위도 금세 활기가 들었다. 늘 쓰고 다니는 파란색의 비니 덕에 병원 사람들에게 파란비니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지우는 내가 입원해 있던 병원의 비타민이자 활력소였다.

지우는 비 오는 날을 좋아했다. 여름 장마철만 되면 그렇게 마음이 들뜨고 설렐 수가 없다고 했다. 특히 비가 오는 날 밤이면 지우는 내 손을 붙잡고 병원 옥상에 올라가 비가 내리는 하늘을 구경하곤 했다. 내게는 그냥 구름이 잔뜩 낀 어두컴컴한 하늘로 보일 뿐인 풍경도 지우에겐 다르게 느껴졌는지, 하늘을 올려다보는 지우의 눈동자는 항상 무언가를 담고 있는 듯 반짝거렸다.

지우와 함께 옥상에 올라갈 때면 우리는 늘 우산을 쓴 채 벤치에 앉아 빗소리에 귀를 기울였다. 나를 향해 온종일 수다를 떨던 지우도 그 순간만큼은 조용히 숨을 죽였다. 지우는 빗소리에 집중하다가도 종종 먹구름이 낀 하늘을 멍하니 올려다보았다. 가끔은 우산 너머로 손을 뻗어 빗물에 소매를 적시기도 했다. 내가 왜 그렇게 비를 좋아하느냐고 물으면 지우는 여전히 하늘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말했다. 일 년 내내 꾹꾹 참다가 여름만 되면 기다렸다는 듯 빗물을 토해내는 하늘이 안쓰럽기도 하면서,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하다고 그러면서 지우는 이 장마가 얼른 끝났으면 좋겠다고도 말했다. 그렇게나 비오는 날을 좋아 주제에 내게는 그런 지우의 말이 모순적이게만 느껴져었다.

몇 주 동안 이어졌던 우리의 가벼운 일탈은 지우의 건강이 나빠지면서 막을 내렸다. 6층을 담당하는 간호사에게 지우의 몸이 좋지 않으니 앞으로는 절대 밖으로 나가면 안 된다는 꾸지람을 들었기 때문이었다. 그동안 들키지 않았던게 아니라, 그냥 눈감아주고 있었을 뿐이었구나. 나는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 기분에 고개를 푹 숙인 채 알겠다고 대답했다. 지우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? 직접 물어보고 싶었으나 나는 그 이후 며칠간 지우를 만날 수 없었다. 새벽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으면 종종 들리는 울음소리의 주인이 혹시 지우는 아닐까 겁이 났던 하루의 연속이었다.

며칠 만에 다시 만난 지우의 얼굴은 그새 많이 야위어 있었다.

볼이 움푹 팬 채 창백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는 지우를 보니 이상하게 목이 메어 오랜만이라는 인사조차 잘 나오지 않았다. 그런 나를 말없이 바라보던 지우는 내 팔을 잡아끌며 귓가에 장난스럽게 속삭였다. 내일 밤에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가 있으니까, 오랜만에 몰래 옥상에 다녀오자. 그 순간 나는 처음으로 지우가 철없는 어린아이처럼 느껴졌다. 나는 내 팔을 붙잡은 지우의 손을 떨치며 어색한 목소리로 말했다. 우리 이제는 정말 옥상에 가면 안 돼. 네가 다 낫고 나면 그때 많이 다녀오자 . ?

그러나 내 말이 끝나자마자 지우는 나를 향해 불같이 화를 내기 시작했다. 너도 다른 사람들이랑 똑같이 나를 곧 죽을 환자 취급하는 거냐며, 꼴도 보기 싫으니 얼른 꺼져버리라고 악을 썼다. 당황스러웠다. 늘 생글생글 웃기만 하던 지우가 그렇게 화를 내는 모습은 처음이었다. 그러나 당황스러움도 잠시, 나는 곧 억울해지기 시작했다. 그저 너를 생각해서 그랬을 뿐이었는데 겨우 몇 시간이면 그 칠 비를 보러 가는 게 당장 목숨을 걸 만큼 중요한 일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. 나는 결국 지우를 향해 가시와도 같은 말들을 쏟아냈다.

고작 비 몇 번 맞고 죽고 싶은 거라면 너나 실컷 그렇게 하라고 네가 혼자 아픈 걸 왜 나한테까지 화풀이하냐고 내 말을 들은 지우는 얼굴을 마구잡이로 일그러뜨렸다. 화가 난 것 같은 표정이었다. 아니,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표정이기도 했다. 나는 그대로 뒤돌아 지우의 병실을 뛰쳐나왔다.

머릿속에 조금 전 지우의 표정이 자꾸 맴돌아 괴롭기만 했다.

나는 남은 일주일 동안 단 한 번도 지우를 만나지 않은 채 퇴원을 했다.

정말 이대로 지우를 만나지 않고 가도 괜찮겠냐며 엄마가 조심스럽게 물어왔지만 내 생각은 변함없었다. 이곳에서 나는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었고, 지우는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었다. 나는 지우에 대해 더 이상 나쁜 기억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. 지우가 내 기억 속에서 영원히 좋은 추억으로만 머무르길 바랐다.

그렇게 올해 유난히도 길었던 장마가 끝이 났다.

나는 모순적이게도 장마가 끝이 남과 동시에 새 우산을 샀다. 지우가 즐겨 쓰던 파란 비니을 닮은 새파란 색의 장우산이었다. 그러나 고른 우산이 불량이었는지, 우산의 윗부분에 조그마한 구멍이 나 있는 것을 발견했다. 평소만큼 비가 온다면 괜찮겠지만, 장마철에 폭우가 쏟아진다면 구멍을 통해 빗물이 울컥울컥 새어 들어올 수 있을 정도의 크기였다. 나는 그 사실을 알고 나서도 쉽사리 우산을 쓰레기통에 버릴 수 없었다.

구멍이 뚫린 파란 우산은, 무서울 정도로 지우의 파란 비닐을 꼭 닮아 있었다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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